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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종차별에 대하여 (2)

밀라노댁 2020. 7. 1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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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씁니다.

 

이런 인종차별은 왜 일어날까요? 

제 생각에는 가장 큰 원인은 유럽인의 뿌리 깊은 우월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1760년대부터, 유럽은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를 선도해왔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 대부분은 유럽에서 기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들이 세계에 퍼져 현대 문명을 이룩해냈다는 자부심. 우리는 앞서 나가고 나머지 국가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을 우러러보고 따라 하려고 한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사실 원료 공급처와 상품시장이 되어주었던 식민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요. 유럽인들은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기는커녕 우리 덕분에 그들이 문명화되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인데요. 한국인들은 항상 독일이 나치 시절의 유대인 학살을 뉘우치는 것을 보고, 일본인과 비교해서 유럽인은 과거사를 반성할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크게 오해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제외하고는 유럽은 식민지배를 별 반성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압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이 과거사를 인정했지만, 그 외의 국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경우 동아프리카와 리비아를 식민 지배했던 과거가 있지만, 동시에 나치 시절에 자국민들이 독일에 강제 징용되어 끌려간 역사가 있습니다. 해방 이후 독일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강제 징용된 사람들에게 배상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유대인에게만 해당했고 이탈리아인에게는 한 푼도 배상해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식민지배를 뉘우치는 국가의 태도일까요?

 

 역시 동아프리카와 리비아를 점령했던 이탈리아인들도 같습니다. 비록 이탈리아 통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게 뛰어들어, 리비아의 경우 지배기간은 10년 가량으로 여타 유럽 국가 식민지배 기간보다 짧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리비아에 사죄를 했습니다. (참고로 리비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이탈리아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식민지배의 원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이탈리아인들의 과거사 인식은 일본인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별로 오래 하지도 않았고, 그건 무솔리니의 파시즘 시절이었지. 우리 국민이 아닌 독재자의 과오이니 우리가 딱히 책임지고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활동과 원조를 하는 등 그들을 돕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자신들이 앞서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 반성은 없이 봉사활동만 하면 도덕적으로 정당해집니까? 이러니 비유럽인 외국인들을 과거 식민지배하던 국가의 사람들로 생각하고 무시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이들은 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 걸까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식민지배를 짧게는 배운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국사를 고등학교 5년 내내 배운답니다. 자기네 나라 역사가 워낙 길어 그렇게 해야 겨우 소화한다네요. 거기에 학교에서는 국사와 유럽과 미국사 의외에는 나머지 세계사에 대해서는 많이 가르치지 않는답니다. 이러니 이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도 없고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는 역사도 문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코로나 19 관련 글에서 유럽인들은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고 존재를 부정한다고 썼었습니다. 아마도 이것도 유럽인 특유의 우월의식 때문에 남의 말을 안 듣는 성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으면 성인이 되어 언론을 보고 배우는 게 있어야 되는데 TV나 신문 어느 곳에서도 과거사 이야기는 특별히 다루지 않습니다. 과거사만 안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미국 소식 의외에는 거의 단신 처리됩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한국이 잘 대처를 했다는 소식을 보도는 하는데 그것을 토막뉴스로 아주 짧게 내보내니 일반 국민들은 기억을 잘 못 합니다. 대신 자극적인 북한 뉴스는 메인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니 사람들은 한국이라면 북한을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TV에서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헐벗고 기아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나오는 구호단체의 광고가 하루 종일 나옵니다. 중국 뉴스는 주로 유럽과의 경제협력이나 공산당 일당체제 독재 비판으로 채워집니다. 이러면 중국에 대한 인식은 돈만 많고 역사도 문화도 없는 뒤떨어지는 국가라고만 여겨지겠지요. (대신 일본에 대한 보도는 긍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이래서 유럽 사람들이 일본이 역사와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언론이 이렇게 보도를 하는 이유는 이래야 시청자가 좋아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생활이 팍팍하고 나라 욕을 실컷 하다가도 이런 뉴스를 보며 그래 나는 여하튼 앞서 나가는 유럽 시민 이지하며 위안 삼으니까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언론에 정치권의 입김이 들어간 게 아닐까?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면 국민들이 들고일어날 테니까요. 

(사실은 유럽과 미국 이외의 세계에 무관심해서 그렇습니다)

 

 유럽인들은 높은 세율과 높은 물가 때문에 생활이 한국인의 그것에 비해 많이 팍팍합니다. 탄탄한 복지 덕에 한국처럼 갑자기 큰 수술을 할 일이 생긴다고 집안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즉, 죽을 때까지 굶을 일은 없지만 대신 풍요롭게 살지는 못합니다.  유럽인들은 미국과 비교해서는 자신들의 소득 수준이 낮지만 여타 국가에 비해서는 높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여타 동양사람들이 훨씬 풍요롭게 사는 것을 알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제 생각에 폭동도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부유한 국가에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았는데 식민지였던 동양의 국가가 더 잘 산다고? 유럽인의 자존심상 절대 못 받아들입니다. 여담이지만, 유럽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의외로 많이 못 옵니다. 휴가기간도 우리보다 훨씬 긴데, 왜?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이들이 동유럽이나나 주변 북아프리카 등으로 주로 휴가를 가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보다 국제적인 시야가 좁은 이유 중에 이것도 한 원인입니다. 한국에서는 돈이 있으나 없으나 유럽으로 많이 놀러 가는 것과 상당히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의 다른 원인으로는 유럽에 대해 맹목적으로 동경하는 우리 자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유럽의 문화, 교육 혹은 그들이 만들어 낸 상품이라면 무엇이든 좋을 것 같고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한국인들. 명품을 사기 위해 백화점 앞에 줄을 서 있는 사진을 유럽인들이 보면서 무엇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런 태도는 그들의 우월감을 한층 강화시켜줄 뿐입니다. 

 

유럽인들이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나 우리가 유럽을 동경하는 태도의 원인은 같습니다. 서로에 대해 너무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들은 유럽 밖의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유럽을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완벽한 복지 체계에서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살 것만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높은 자존심이나 열등감은 이제 그만 걷어내고 사실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1편 제일 앞에 썼던 저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놀리고 도망간 이야기의 반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에 이탈리아인 남편과 제가 다시 같은 길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탄 소년이 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이 있었을 때 그 애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었는데, 어쩐지 느낌적 느낌으로 지금 제게 다가오는 그 애가 그때 그 애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그 애를 두 눈으로 노려봤는데 그 애가 갑자기 저한테 거수경례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인종차별에 대해 처음으로 받아보는 사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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