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이야기

소죠르노 린노보 후기 (2) : 그 날 들은 것과 본 것 본문

밀라노 생활기

소죠르노 린노보 후기 (2) : 그 날 들은 것과 본 것

밀라노댁 2020. 10. 2.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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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라노 퀘스투라 방문 첫날. 대기실에서 장장 4시간을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아까부터 계속 같은 여자가 창구 안쪽의 문으로 들락날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들어갈 때마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처음에는 누구일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그 여자가 손에는 서류를 들고 있었고 같이 들어가는 사람과 그리 친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짐작이 갔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브로커! 밀라노에 사는 외국인 사이에는 소죠르노 전문 브로커가 있다는 이야기가 알음알음 전해졌는데 아마 그게 사실인 듯합니다. 도대체 퀘스투라의 어떤 인맥과 끈이 닿아있길래 저런 영업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침밥도 못 먹고 새벽부터 나와서 줄 서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는 편하게 돈 주고 쉽게 받는다는 말이지? 

이탈리아 어느 관공서나 브로커 안 끼면 일이 안 되는 건 알았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니 참으로 씁쓸했습니다. 어느 제3세계의 국가도 아니고 G7 국가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여러분. 

2. 밀라노 퀘스투라 방문 둘째 날.  이번에는 퀘스투라 건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밖에서 줄 서며 본 것입니다. 갑자기 앞에서 큰 소리가 나서 보니, 어떤 서아프리카계 아줌마가 그 특유의 화려한 전통복장을 입고 애 둘 데리고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10년을 일했는데 서류심사도 못 받아보게 퀘스투라 건물 안에도 못 들어가게 하네!! 아이고!!!"

경찰 세 명이 그 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달라붙었는데요, 제가 보기엔 그냥 쇼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지역에서는 자격이 안 되면서 온갖 개인사를 앞세워 봐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마도 이 아줌마도 그 방법을 배워서 여기서 써먹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한 10분 정도 지속이 되었는데요, 제가 먼저 건물에 들어가는 바람에 끝까지 못 봤지만, 아마도 끝내 건물 안에 못 들어갔을 겁니다. 

3. 밀라노 퀘스투라 방문 셋째 날. 이번에도 퀘스투라 밖에서 줄 서면서 들은 것입니다. 제 바로 뒤에 어떤 중년의 이탈리아 남자분이 저한테 이 줄이 패스포트 신청하는 줄이냐고 물어서 소죠르노 신청하는 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어떤 한 30살쯤 돼 보이는 여자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왔습니다.  그 둘이 대화하는 걸로 보아 둘은 부부 사이고 이 여자의 소죠르노를 신청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한 10분쯤 지나자, 정장 차림의 여자가 또 왔는데요, 남자와 악수를 하고 곧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대화 내용으로 봐서는 여자는 이들이 고용한  변호사였습니다. 근데 듣고 있으니 너무나 엉터리로 조언을 하고 있더라고요.  먼저 온 여자와 변호사는 둘이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걸로 보아 러시아 사람 같았는데요 (혹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구소련 국가 출신)  그 여자는 남편과 이탈리아어로 아무 문제없이 대화하는 걸로 보아 이탈리아어도 꽤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는 소죠르노 취득을 위해서는 이탈리아어는 최대한 못하는 척하고 들어가서 남편과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대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나도 이탈리아인 남편과 결혼한 외국인인데, 들어가서 이탈리아어로 남편하고 대화해도 소죠르노 내주던데?  저런 엉터리 조언을 듣자고 이 변호사한테 얼마를 썼을까요? 

 

4. 이탈리아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들이 퀘스투라 갈 때가 되면 한숨부터 쉽니다.  오래 기다려야 하고, 자기네들이 가져오란 말도 안 해놓고 서류 빠졌다고 몇 번을 헛걸음하게 만들고, 우편으로 발송한 서류는 안 받았으니 다시 내라고 하고. 등등. 그런데 이 퀘스투라 건물 밖에서 기다릴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부러운 사람도 차고 넘칩니다. 이탈리아 최남단에 있는 람페두사 섬으로 날마다 보트 타고 몰래 건너오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이곳에 줄도 한 번 못 서봅니다. 여기에 줄 서려면 최소 4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하고 , 예약하기 위해서는 요구하는 서류가 정말 많거든요.  여기 이 줄에서 서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아랍계와 아프리카계인데 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운이 좋은 쪽에 속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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