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 이야기

가성비 갑이었던 여름 휴가 (2) : Chiavenna 본문

밀라노 생활기

가성비 갑이었던 여름 휴가 (2) : Chiavenna

밀라노댁 2020. 10. 11. 05:12
반응형

스마트박스에서 고른 숙소를 예약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휴가 날이 왔습니다.

8월 17일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메트로를 타고 밀라노 첸뜨랄레 역에 왔습니다. 늘 그랬듯, 역에 있는 바에 가서 커피와 브리오쉬로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요. 코로나 19로 인해 여행객이 별로 없어서 일까요. 역사에 있는 많은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열려있는 곳도 직원 수를 줄인 곳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1층에 있는 데시구알 옷가게 앞에 있는 바에 갔는데, 직원을 딱 한 명 고용해서 운영하는 통에, 모든 테이블이 청소가 안 된 그대로 남이 먹던 커피 잔과 빵부스러기가 잔뜩 있었습니다. 다른 바도 둘러봤는데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남이 먹던 커피잔을 슬쩍 옆으로 밀어내고 엉거주춤 앉아 먹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밀라노 첸뜨랄레 역에 스타벅스가 있었더라고요. 가격도 한국처럼 비싸게 받지 않고 이탈리아 바와 비슷하게 받던데 거기 갈 걸 그랬어요. 평소에 스타벅스를 안 가니 몰랐는데 이 정도로 청소가 안 된 지저분한 바를 갈 바에는 거길 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전 9시 20분 드디어 기차가 출발합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코모 호수의 북동쪽 끝에 있는 Colico라는 곳까지 가고, 거기서 산악 구간을 다니는 기차로 갈아타 끼아벤나로 이동할 겁니다. 우리가 탄 기차는 Regionale라고 주 안에서 이동하는 기차인데요, 시설이 낡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인 연착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지금은 차례로 신식 차량을 도입해서 뽑기 운이 좋으면 새 기차를 탈 수 있어요. 갈 때는 오래된 기차, 올 때는 새 기차를 탔습니다. 

사실 밀라노 북쪽으로 올라가 꼬모 호수를 가는 기차는 많이 타 봐서 처음가는 설렘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휴가는 휴가이니까 집이 아닌 다른 곳을 가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기차는 꼬모 호수 일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레코를 지나 호수를 끼고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차창 밖으로 호수가 계속 보이기 때문에 풍경이 좋아요. (첫 번째로 큰 도시는 꼬모)

그리고 콜리코역에서 내려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 여기저기를 구경했습니다. 작은 동네라 딱히 볼 것은 없었으나 호숫가로 가니 이게 웬걸. 호숫가를 따라 쭉 있는 식당과 카페들이 어우러져 한국인이 상상하는 유럽 풍경 고대로였네요. 갈 때는 기차 시간 때문에 오래 못 있었고 올 때 점심도 먹고 좀 머물다 왔기 때문에 이 곳은 마지막 포스팅에서 자세히 더 쓰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서 산악지대 전용 기차를 타러 갑니다. 이 기차를 탈 때는 주의할 점이 있는데요. 기차역 전광판에서 Binario 1TR라고 써져있는데, 이건 1번 플랫폼으로 가라는 게 아니라 1번 플랫폼에서 연장된 Tronco 1번 플랫폼으로 가라는 겁니다. 잘 모르시면 기차 시간 다 돼서 남들 다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됩니다. (여행자는 눈치가 빨라야 해요)

열차는 본격적으로 알프스 산악 지대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꼬모 호수 위에 있는 작은 메졸라 호수를 지나 계속 북으로 달립니다. 약 30분 남짓 지나면 이 열차의 종착역인 Chiavenna에 도착합니다. 

Chiavenna는 고도 333미터에 위치한 인구 7000명 정도의 작은 동네입니다.  이 일대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동네인데 우리는 이 곳을 기점으로 하여 5일간 이 일대를 다녔습니다. 기차역 바로 앞에 주변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심지어 스위스의 생모리츠까지 가는 버스도 있습니다.  기차역 주변에 호텔이 많이 있고 식당과 바, 간단히 장을 볼 수 있는 마트도 있어 편리합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맡기고 근처에 있는 피자집에 갔습니다. (Ristorante Pizzeria San Lorenzo라고 호텔 밑에 있는 식당 겸 피자집이었습니다) 피자는 이탈리아 지역마다 정말 다양한데 이곳은 산악지역답게 그 지역의 명물인 Bresaola를 올린 피자가 있더라고요. (Bresaola는 소금에 절인 소고기를 몇 달 동안 숙성시킨 것입니다) 과연 밀라노 시내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맛있었는데 가격도 착해서 9유로 밖에 안 하더라고요. 밀라노에서 이 정도 퀄리티 피자는 4,5유로는 더 줘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라노 시내에서 이 정도 고퀄리티는 찾기도 어렵습니다. 밥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려는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 한참 기다리다가 조금 올 때 뛰어서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산이라 날씨가 변화무쌍한 걸 알고 우산을 가져는 왔는데 그게 호텔에 맡긴 짐 속에 있었지 뭡니까. 

이 지역의 명물 Bresaola를 얹은 피자
남편이 시킨 사과와 고르곤졸라. 역시 알프스 지역의 특산물인 사과를 이용했는데 역시 맛있었다. 

두어 시간 지나자 비가 그쳐서 호텔 바로 뒤에 있는 산에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비가 내린 직후라 산은 습하고 더워서 끝까지 올라가는 건 시원하게 포기했습니다. 중간에 전망대 비슷하게 생긴 곳이 있어 거기 잠깐 있다가 바로 내려왔어요. 내려오는 길에 웬 건물이 있어보니 정신병원이더라고요. 

 한국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알프스 곳곳에 정신병원과 요양원이 넘쳐납니다. 다 최근에 생긴게 아니고 1800년대부터 있었답니다.  근대 유럽 소설 보면 귀부인들이 신경쇠약으로 알프스 요양 간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소설을 읽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여기 살아보니 이제 이해가 됩니다. 겨울 내내 해를 못 쬐서 우울증에 신경쇠약 걸려서 겨울철에도 해가 나고 공기가 맑은 알프스에 오면 병이 저절로 나을 것만 같습니다. 

저녁은 호텔에서 주는 밥을 먹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Mezza pensione라고 호텔 예약할 때 조식과 석식을 같이 예약하면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다만 메뉴는 일반 식당처럼 고를 수 있는 건 아니고 호텔 측에서 준비한 메뉴 그대로 먹어야 합니다. 어떤 호텔은 단일 메뉴만 있기도 하고 어떤 호텔은 두세 가지 메뉴를 준비해서 고를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트러플 버섯이 아주 살짝 얹져진 파스타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와 소스가 곁들여진 소소기. 전형적인 알프스 지역 요리.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