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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화장실 누수 공사 후기

밀라노댁 2020. 12. 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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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화장실 누수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같습니다. 그렇지만 두 단어는 밀접한 관계가 분명 있습니다.  얼마 전에 화장실 누수 공사를 마쳤는데, 오늘은 그 후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이탈리아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고, 그 해결 방식도 너무나 이탈리아다웠습니다.  이탈리아에 사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고 생활정보를 얻는데, 그 외 국가에 거주하는 분들은 이탈리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후기를 시작합니다. 

한 달 전 쯤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남편한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발신자는 아랫집 할머니였습니다. 예감이 벌써 안 좋습니다. 성격 까칠한 할머니는 우리한테  좋은 일로 전화하지 않습니다. 아! 뭐가 또 일이 생겼구나! 자기 집 화장실 천장에 얼룩이 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우리 집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는 겁니다. 

이 한 통의 전화가 그 날부터 한 달동안 우리 집의 분위기를 다운시켜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락다운과 업무 때문에 힘든데, 앞으로 공사를 얼마나 크게 해야 할지,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남편이 더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일단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동네에 화장실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업자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 아침 9시에 당장 보러 온답니다. 오! 이렇게 빨리 와준다니 이탈리아에서 드문 일인데 고맙네?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 8시가 넘자마자 일찍 오겠다는 연락 한 통 없이 왔습니다. 9시에 온다더니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왼쪽 다리를 다쳐서 목발까지 짚고 나타난 그는 우리 집과 아랫집의 화장실을 둘러보고는 우리 집 변기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새는 부분의 고무패킹을 바꿔보고 안 되면 공사를 크게 해야 할 것 같은 말을 하고는, 일단은 다음 날 와서 패킹을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본인 대신 직원들을 보내 고무패킹을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경과를 한 1주일 쯤보자고 했습니다. 고무패킹 교체에만 50 유로 줬습니다. 

1주일 후. 안 좋은 예감대로 물이 계속 새고 있었습니다. 아랫집 할머니는 이제 거의 날마다 전화를 했습니다. 이제는 얼룩이 화장실에서 거실천장까지 번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고무패킹 교체 가지고는 어림도 없고, 벽을 깨서 어디서 새는지 알아내야 할 단계가 온 것입니다. 다시 업자한테 전화를 했고, 그는 벽을 깨는 일은 본인이 못 하고 벽돌공이 해야 하는데 내일 오후에 자기가 아는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날 오후 내내 저와 남편은 기다렸지만 온다던 사람은 오지도 않고 연락 한 통 못 받았습니다. 

화가 났지만 일단 급한 불을 꺼야하므로 인터넷에서 다른 업자를 찾아봤습니다. 누수 전문 업체가 있어서 연락을 해봤습니다. 이틀 후 아침 9시에 보러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자기네가 독일 보쉬의 수만 유로짜리 누수탐지 기계를 가지고 체크한다면서, 그 기계 사용료와 체크하는데만 350유로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 돈 들여도 화장실 전체 바닥을 깰 필요 없이, 딱 필요한 부분만 깨니까 결과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하는 거라네요.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틀 후 9시보다 조금 늦은 9시 반 경에 와서 비데의 온수를 15분간 틀어놓고 탐지기를 하나는 우리 집에 다른 하나는 아랫집에 놓고 측정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19의 감염방지를 위해 측정하러 오신 분들은 밖에 나가 본인 차에서 대기하였습니다. 15분 뒤에 돌아와서는 우리 집 화장실의 변기로 세면대와 비데의 배수관이 이어지는 데 이 배수관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 주 내로 공사를 하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또 연락이 없길래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내일 오겠답니다. 그 내일이 되어 또 연락이 없어 물어보니 수리할 사람이 코로나 19에 걸려 자가격리 중이랍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확진되어도 중증 아니면 그냥 집에서 자가 격리합니다.) 오, 맘마미아!!! 이 와중에 할머니한테 전화가 또 왔습니다. 이제는 거실 천장에서 거실 벽까지 얼룩이 다 번졌답니다. 남편이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하소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믿을 만한 사람 누구 없냐고 물어봤는데 다행히도 있답니다! 시댁에 주말마다 오가면서 본 아랫집 시베리안 허스키 주인이랍니다. 당장 1시간 뒤에 보러 갈 수 있다네요! 역시 이탈리아는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1시간 뒤에 단 5분도 늦지 않게 시아버지와 함께  오셨습니다. 시베리안 허스키 주인으로만 알던 그의 이름은 도메니코였고, 본 직업은 벽돌공이었으나 간단한 배관공 업무도 배워서 할 줄 안답니다. 아랫집도 보고 난 후 그는 변기 부근에서 물이 새는 것 같긴 한데 일단은 바닥을 깨 봐야 알겠다며 다음 주 월요일 아침 9시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월요일 9시가 되었습니다. 1분도 늦지않고 정확하게 도착하였습니다. 공사를 하기도 전에 약속한 시간에 제대로 와 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마워 커피를 마시겠냐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수만 유로짜리 보쉬 누수탐지기로 체크한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래도 변기 아래에 있는 배수관에서 누수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거기 바닥을 깨 봐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도메니코는 그 말을 듣고 고정되어 있던 변기를 옆으로 옮기고 바닥을 깼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닥이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응? 우리 350유로나 주고 검사받아봤다고.  변기를 들어내고 나니까 변기 수조에서 변기로 공급하는 관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는 겁니다. 봐봐, 여기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잖아. 그런데 근본 원인은 관이 아니라 수조가 깨진 것 같답니다. 

자, 여기서 이탈리아가 아닌 한국이나 타국가에 거주하는 분들을 위해 설명들어갑니다. 한국에는 집집마다 변기의 모양이 대략 비슷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서는 그 모양이 각양각색입니다. 물을 내리는 버튼도 위치가 다양하고, 수조도 원래는 한국처럼 변기에 바로 붙어있었습니다. 요새는 그놈의 이탈리아의 미적 감각 때문에 변기 수조가 보기 싫다고 벽 안에 넣고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집의 경우가 이런 경우입니다. 

수조가 깨졌다는 말은 벽을 깨고 수조를 교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 이, 아!!!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번은 벽을 깨야하는 대공사이니 돈 깨지고 집이 난장판이 되겠구나이고, 2번은 수만 유로짜리 보쉬 기계 다 필요 없네입니다. 쓸데없이 350유로 헛날렸구나. 

도메니코 왈, 일단은 자기 말이 맞는지 검증이 필요하니 우리집 수조를 잠가놓고 며칠 동안 경과를 보자고 했습니다. 아랫집 천정 얼룩이 더 이상 안 번지면, 그때 공사를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화장실 누수
깨진 수조. 벽에 넣는 방식이다 보니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있습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 그의 말이 맞는 것이 확인이 되었고, 그 며칠 후에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공사는 6시까지 진행이 되었습니다. 벽을 깨고 수조를 꺼내보니 그의 말대로 정말 깨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도메니코의 말이 더 기가 막혔습니다. 첫 번째 우리 집에 온 업자는 이미 우리 집 문제의 원인을 알았을 거랍니다. 수조와 변기를 잇는 관의 고무패킹만 바꾸고 갔는데 경력이 수십 년쯤 된 사람이면 고무패킹이 문제가 아니란 걸 알았을 거라는 거죠. 그럼 왜 고무패킹만 바꾸고 갔냐? 아마도 문제를 더 키워서 공사를 크게 하려고 그런 짓을 한 것 같답니다.

그러니까 물이 샌 것도 문제지만 처음에 업자를 잘못 만나 문제를 키운거랍니다. 아! 이 글 쓰다가 아!라는 글자를 몇 번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동네에서 다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 일하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대!!!

도메니코는 수조를 꺼내고 모델명을 확인하고 납품업자한테 해당모델의 수조를 살 겸 점심을 먹을 겸 두어 시간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돌아올 때는 새 수조 뿐만 아니라 벽에 넣을 내장재도 사서 가리고 돌아왔는데요. 수조가 깨진 원인은 이 수조가 자리한 화장실의 벽이 바로 외기와 맞닿아있어 온기와 냉기를 번갈아 맞아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랍니다. 그래서 수조를 설치하기 전에 내장재를 먼저 넣어 외기를 차단시키고, 그다음에 수조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시멘트를 잘 개어 구멍 뚫린 벽을 막고 우리 집에 있던 여분의 타일로 마감을 했습니다.

이탈리아 화장실 누수
수조 안에 갈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내장재.

여기까지 해서 공사가 끝이면 좋았겠지만, Stucco라는 작업이 남았답니다. 석고 반죽에 대리석 가루, 점토분 등을 섞어 타일 위에 발라주는 것인데요, 이렇게 하면 내구성도 좋아지고 보기에도 좋아진답니다. 타일을 일부만 새 걸로 바꿔서 다른 타일과 구분이 돼서 보이는데요, 이 작업을 하면 그게 없어져 통일감을 준다네요. 화장실 공사에만 쓰이는 용어가 아니고 이탈리아 미술 전반에 쓰이는 용어인데, 포털사이트에서 '스투코'라고 검색하면 미술용어로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 작업을 바로 할 수는 없고 시멘트가 마르기까지 약 1주일 기다렸다가 하자고 했습니다. 

1주일을 더 기다려 스투코 작업을 한 두시간하고 드디어 한 달여만에 우리 집 공사는 다 끝났습니다. 

아랫집 화장실과 천장 그리고 벽을 새로 페인트 칠 해줘야 하지만, 겨울인 지금은 우기라 잘 안 말라서 봄까지 기다렸다가 말려서 칠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랫집 할머니는 비싼 집보험을 들어 고맙게도 그 비용은 자기가 보험 처리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집에 엄청 까다롭게 굴어 힘들게 했는데 이번에는 의외네요. 

결론

-이탈리아에 사시는 분들께

1. 누수 문제가 생겼을 때 구글에서 누수 (Perdite d'Acqua) 전문이라고 광고하는 업자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그 비싼 기계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차라리 경험 많은 사람이 와서 감으로 아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2. 저한테 비댓으로 도메니코 연락처 물어보시면 알려드립니다. 밀라노 전 지역에서 가능하답니다. 특히 거래업체가 몬짜에 있어 거기 근처 사시는 분들은 방문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도메니코는 원래는 무라토레 일을 하던 사람인데 이드라울리코 일도 배워서 간단한 일은 할 줄 안답니다. 그러나 이드라울리코 체르티피카토가 있는 사람은 아니라, 전문적인 공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아는 다른 이드라울리코를 대신 불러준다고 했습니다. 

-이탈리아 외 국가에 사시는 분들께

화장실 공사를 하면서 문제의 시작부터 해결과정까지 정말 이탈리아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변기 수조까지 벽에 넣어 마감을 해버릴 정도로 미적 감각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 나라의  실내장식, 가구 산업 등이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국가의 한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성향이 뒷받침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빠르고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국민성 덕에 전자제품 등이 발달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는 개개인의 외모뿐만 아니라  거주 환경도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실내장식, 가구 산업 등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선호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놓치는 부분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름다움을 위해 편리함과 신속함, 경제성을 놓칩니다. 편리함을 최고 가치로 아는 한국인이 이탈리아에 와서 살면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한국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대신 놓치는 것이 있겠지요. 

공사과정도 참으로 이탈리아스러웠는데요. 남부에 비해 비교적 일을 잘한다는 북부에 거주하는데도, 약속시간에 제대로 나타난 사람은 세 명 중 한 명뿐이었습니다. 물론 팬데믹이라는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러니 많은 외국인들이 이탈리아인들하고 같이 일하기가 어렵다는 평을 하는 것이겠지요. 결국 해결도 지인을 통해 된 것도 이탈리아스러웠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되는 일도 없지만, 아는 사람만 있으면 갑자기 안 되던 일이 해결이 되거든요.

G7의 일원이면서도 가끔은 제 3세계에 사는 것 같은 특이한 국가, 이탈리아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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